정작 이날의 주인공이라 더 힘들었을 딸은 식탁에 하나둘 음식을 차렸다. 그 밥상은 꽤 익숙해 보였다. 내가 늘 딸에게 차려주던 그대로였다. 어묵볶음과 뚝배기에 끓인 된장찌개, 달걀찜, 묵은지볶음 등등…. “맛있는 거 사주려고 했는데 뭐 하러 힘들게 차렸냐”고 하니 딸아이는 “엄마 집밥 드시게 하려고 그랬지…”라고 답했다.
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. 매일 출근하느라 집에서 밥을 해 먹은 지가 언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외식으로 일관하는 나에게 손수 지은 밥으로 상을 차려 주려는 딸아이의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민망했다. 내 음식솜씨가 친정엄마와 닮았듯, 딸아이가 만든 반찬 역시 나와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다. 새 신부라 하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반찬을 참 잘 만들었다. 딸아이의 결혼식 때도 사위에게 “혼자서도 구첩반상을 차려 먹는 부인과 결혼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”고 말해 식장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.
집밥. 생각해 보니 친정엄마도 늘 집에서 밥 먹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다. 집에서 먹는 밥이 보약이라던 엄마의 말을, 딸아이가 차려준 집밥을 통해 다시 돌려받고 있으니 참 고마운 일이다. 이래서 딸이 있어야 한다고들 하나 보다.
딸은 나와 같은 전공(국악 작곡)을 해서 서로 잘 통할 것 같은데, 음악 해석이나 공연에 대한 접근 등 의견이 다르기도 하다. 어쩔 수 없는 세대 차이 때문에 수시로 부딪히기도 한다. 게다가 매사 분명하고 정확한 걸 지향하는 딸이기에 정신없이 사는 나와 다투기도 했고, 무뚝뚝한 내 성격 때문에 딸은 소소하게 삐치기도 했다. 그러나 사소한 다툼 끝에 먼저 풀자고 손 내미는 쪽은 늘 딸이었다.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입으로 못 내는 바보 같은 엄마를 속 깊게 챙기고 있었다는 걸 딸이 차려준 집밥을 통해 깨달았다.
그런 딸아이의 섬세함이 이제 나이를 먹어가는 나의 보호자가 돼주는 것 같아 코끝이 찡해진다. 인정하긴 싫지만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며 어쩔 수 없이 노인이 되고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이 돼간다. 이 사실이 슬프긴 하다. 어쩌면 자연의 순리이긴 하겠지만, 난 딸 같은 엄마가 아니라 엄마 같은 엄마로 남았으면 좋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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